1970년대 초반
연재 · 종로, 길 위의 세월 제2화 (전 3화)
만원 버스 손잡이에 매달린 아침
궤도가 걷힌 종로의 정류장, 차장 '안내양'의 오라이 소리, 문틈에 몸이 반쯤 걸린 채 떠나던 출근길. 연재 '종로, 길 위의 세월'의 두 번째 장면입니다.
공개일

전차가 떠난 종로의 아침은 전보다 부산해졌다. 궤도가 걷혀 매끈해진 길 위로 버스들이 꼬리를 물고 달렸고, 정류장마다 사람들이 목을 빼고 제 번호를 기다렸다. 땡땡 종소리 대신 경적과 엔진 소리가 거리의 아침 인사가 되었다. 같은 길인데 걸음의 속도부터 달라져서, 사람들은 저마다 조금씩 빨라진 하루에 몸을 맞춰 갔다.
장면 · 정류장
버스가 정류장에 미끄러져 들어오면 기다리던 줄이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먼저 오른 사람이 안에서 손을 내밀어 일행을 끌어올리고, 뒤에서는 차장이 등을 받쳐 밀어 넣었다. 몸이 문틈에 반쯤 걸린 채로도 버스는 부르릉 몸을 떨며 출발했고, 손잡이를 놓친 사람들은 앞뒤 사람의 어깨에 기대어 균형을 잡았다. 차창에 김이 뽀얗게 서린 만원 버스 안에서, 서울 사람들의 하루가 그렇게 부대끼며 시작되었다.
시대 자료로 확인한 대목
전차가 멈춘 뒤 서울의 발은 온전히 버스가 되었다. 문가에는 '안내양'이라 불린 젊은 차장이 타서 찻삯을 받고, 손바닥으로 차체를 두드리며 '오라이'를 외쳐 출발을 알렸다. 새벽 첫차부터 밤 막차까지 문에 매달리다시피 일하던 안내양들은, 1980년대 들어 안내양 없는 자율버스가 늘면서 차츰 자취를 감추었다고 전한다.
편집 확인 · 서울기록원·당시 보도 확인
"오라이 —" 그 한마디에 버스가 몸을 떨며 나아갔다. 뛰어오는 사람이 보이면 안내양은 문을 잡은 채 한 번 더 외쳤다. "스톱! 한 분만 태우고 가요."
장면 · 차장 손
안내양의 한 손은 늘 지폐와 동전으로 두둑했다. 어른들은 손바닥에 찻삯을 올려 주었고, 학생들은 열 장씩 묶인 종이 회수권을 한 장씩 뜯어 내밀었다. 붐비는 문가에서 거스름돈을 셈해 내주면서도 안내양은 내릴 사람과 탈 사람을 다 눈에 담고 있었다. 작은 손 하나가 버스 한 대의 살림을 도맡던 셈이었다.
비 오는 날의 버스는 더 붐볐다. 젖은 우산들이 통로에서 서로 몸을 부비고, 안쪽 유리에 김이 서려 바깥이 보이지 않으면 누군가 소매로 동그랗게 창을 닦아 정류장 이름을 읽어 주었다. 안내양은 그 북새통 속에서도 용케 내릴 사람을 기억해 두었다가 등을 두드리며 문 쪽으로 길을 터 주었다. 종점이 가까워 한산해진 버스에서 안내양이 창가에 기대어 조는 얼굴을 보면, 누구든 괜히 마음 한쪽이 짠해졌다.
장면 · 저녁 종로
저녁 무렵 돌아오는 버스가 종로를 지날 때면, 나이 지긋한 승객들은 이따금 창밖을 오래 내다보았다. 궤도가 있던 자리는 감쪽같이 메워졌지만, 어디쯤에서 전차가 서고 어디쯤에서 종을 울렸는지는 몸이 먼저 기억했다. 버스는 전차보다 빨랐고, 그만큼 창밖 풍경도 빨리 지나갔다. 빨라진 길 위에서 사람들은 가끔, 느리던 시절의 종소리를 그리워했다.
손잡이에 매달려 흔들리던 그 아침들이 한 도시의 성장기를 실어 날랐다. 부대끼던 어깨와 오라이 소리, 창에 서리던 입김까지 — 만원 버스는 비좁았지만, 그 안의 하루하루는 어디로든 가고 있었다.
CONTEXT STAMPS
이 이야기의 시절과 장소
THEN & NOW
그 시절 →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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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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