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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반

병풍 뒤 놋그릇이 빛나던 밤

전 부치는 기름 냄새, 볏짚에 재를 묻혀 닦던 놋그릇, 나직한 축문 소리와 늦은 밤의 음복. 1970년대 초 안동 큰집의 제삿날 밤입니다.

공개일

병풍 앞에 놓인 놋그릇과 촛불을 그린 안동 제삿날 밤 일러스트

제삿날이 다가오면 안동 큰집 마당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부엌에서는 전 부치는 기름 냄새가 문틈으로 스며 나와 온 집 안을 감쌌고, 사랑방에서는 어른이 오래된 병풍을 조심스레 펼쳤다. 접힌 자리마다 세월이 밴 그림이 방 안을 아늑하게 둘렀다. 마루 끝에서는 아이들이 볏짚에 재를 묻혀 놋그릇을 닦았다. 문지를수록 흐릿하던 놋쇠가 조금씩 제 빛을 되찾았고, 손끝에는 서늘하고 묵직한 쇠의 감촉이 남았다.

장면 · 장날

제사를 며칠 앞둔 장날이면 큰어머니는 새벽차를 타고 장에 나섰다. 어물전 앞에서 마른 문어와 간고등어를 몇 번이고 들었다 놓으며 살피고, 과일전에서는 흠 하나 없는 배와 사과만 골라 담았다. 값을 깎으면서도 제사상에 올릴 것이라는 말만은 꼭 보탰는데, 그러면 상인도 군말 없이 제일 실한 놈으로 바꿔 주었다. 아이들은 장 구경을 따라나섰다가 엿 한 가락을 얻어 물고, 어른들 흥정이 끝나기를 전봇대 밑에서 기다렸다. 장에서 돌아온 보따리가 마루에 풀리는 순간부터, 집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장면 · 제사

해가 지고 밤이 깊어지면 일가 어른들이 하나둘 대문을 들어섰다.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이 마루에서 소곤거리는 사이, 안방에서는 향 사르는 냄새와 나직한 축문 소리가 흘러나왔다. 촛불이 흔들릴 때마다 놋그릇에 담긴 음식들이 은은하게 반짝였고, 어른들의 절이 이어지는 동안 아이들은 숨을 죽인 채 그 엄숙한 온기를 지켜보았다.

장면 · 음복

제사가 끝나면 늦은 밤의 음복이 시작되었다. 식은 탕국에 밥을 말고, 나눠 먹는 나물 한 젓가락에도 정이 담겼다. 졸음이 밀려오는 아이를 무릎에 뉜 채, 어른들은 돌아가신 분들의 이야기를 도란도란 이어 갔다. 창밖은 캄캄한데 방 안만 노랗게 밝던 밤이었다.

"제사는 상차림이 아니라 정성이다." — 음복상 앞에서 큰아버지가 해마다 빠뜨리지 않던 말씀이었다. 그 말에 어른들은 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고, 방 안이 잠시 조용해지곤 했다.

그 밤의 이야기들 덕에 아이들은 얼굴도 모르는 웃어른들의 삶을 제 것처럼 물려받았다. 기억은 그렇게, 상 위의 음식과 함께 다음 세대로 건너간다.

CONTEXT STAMPS

이 이야기의 시절과 장소

고향: 경상북도 · 안동시연대: 1970년대 · 전반

THEN & NOW

그 시절 → 지금

오래된 장면에서 오늘 챙겨 볼 생활정보로 길을 이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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