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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

연재 · 우다방 연가 2 (전 3화)

대한뉴스가 끝나면 불이 꺼졌다

극장 매표소 앞의 긴 줄, 애국가에 일제히 일어서던 관객석, 통금 사이렌보다 먼저 달려야 했던 골목. 연재 '우다방 연가'의 둘째 이야기입니다.

공개일

극장 간판과 영화표 두 장, 단팥빵 봉투를 그린 극장 나들이 일러스트
"이번 주말에, 영화 한 편 어떻습니까." — 우체국 앞에서 몇 번을 만난 뒤에야 겨우 나온 말이었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서야, 물었던 쪽도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장면 · 매표소

토요일 오후의 극장 앞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건물 한 면을 다 차지한 손그림 간판 속 배우의 얼굴이 행인들을 내려다보았고, 매표소 앞으로는 줄이 길게 이어졌다. 표 두 장을 사서 한 장을 건네는 손이 괜히 어색해서, 두 사람은 간판 속 배우 이야기만 부지런히 주고받았다. 극장 안 매점에서 오징어 굽는 냄새가 문틈으로 새어 나와 골목까지 달큰했다.

시대 자료로 확인한 대목

그 시절의 밤에는 시간의 금이 그어져 있었다. 자정부터 새벽 네 시까지 거리를 다닐 수 없는 야간통행금지가 광복 직후부터 이어져 오다 1982년 1월에야 전면 해제되었다. 밤이 이슥해지면 거리의 걸음이 일제히 빨라지던 데에는 그런 사정이 있었다.

편집 확인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야간통행금지' 항목·당시 보도 확인

불이 꺼지기 전, 스크린에는 언제나 대한뉴스가 먼저 올랐다. 애국가가 울리면 관객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고, 새 다리가 놓이고 공장이 준공되는 소식이 우렁찬 목소리로 이어졌다. 본영화가 시작되고서야 극장 안은 비로소 저마다의 어둠이 되었다. 스크린 불빛이 옆자리 얼굴에 어른거리는 것을 곁눈으로 훔쳐보느라 줄거리를 놓치는 관객도 더러 있었다.

장면 · 어둠 속

슬픈 장면에서 옆자리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면, 주머니 속 손수건을 꺼낼까 말까 망설이는 손이 있었다. 팔걸이 위에 놓인 두 손의 거리는 영화가 끝나도록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지만, 극장을 나설 때 두 사람의 어깨는 들어갈 때보다 한 뼘 가까워져 있었다. 불이 켜지고 마주 본 순간, 방금 본 영화의 제목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았다.

장면 · 골목

빵집에서 단팥빵 한 봉지를 사서 나눠 들고 걷다 보면 밤은 금세 깊어졌다. 통금 사이렌이 울리기 전에 서로의 집 방향으로 헤어져야 했으므로 골목 어귀의 인사는 늘 아쉽게 짧았다. 버스가 끊긴 밤이면 신작로를 내달리는 구두 소리가 저 혼자 요란했고, 대문을 들어서고서야 뛰느라 몰랐던 심장 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통금 탓만은 아니라는 것을, 본인만 몰랐다.

다음 만남까지의 며칠은 유난히 길었다. 책상 앞에 앉아 편지지를 몇 장씩 버려 가며 안부의 말을 골랐고, 우체국 창구에 편지를 밀어 넣은 날에는 답장이 오기도 전에 벌써 봉투 뜯는 상상을 했다. 약속 장소는 물을 것도 없이 늘 그 자리, 우다방 앞이었다.

영화 한 편, 단팥빵 한 봉지, 통금 전의 달리기 — 가진 것 없던 연애의 목록은 그토록 단출했다. 그런데도 그 시절을 지나온 이들은 안다. 좁혀지지 않던 팔걸이 위 두 손의 거리만큼 애틋한 것이, 그 뒤로는 좀처럼 없었다는 것을.

CONTEXT STAMPS

이 이야기의 시절과 장소

지역: 광주광역시연대: 1970년대 · 후반

THEN & NOW

그 시절 →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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