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풍남문 곁 좌판, 사계절의 어머니들
봄나물 소쿠리에서 가을 무말랭이, 겨울 김장 배추까지 철 따라 얼굴을 바꾸던 좌판과 저녁 계모임. 1970년대 전주 남부시장 언저리 여성들의 한 해를 따라갑니다.
공개일

시대 자료로 확인한 대목
전주 남부시장은 조선시대 전주성 남문 밖에 서던 장이 모태다. 풍남문 일대에 서던 장들이 모여 커졌고, 1936년 시장을 크게 고쳐 지으면서 '남부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전성기에는 전국의 쌀 시세가 이 시장에서 정해졌다고 전할 만큼 호남을 대표하는 장터였다.
편집 확인 · 지역N문화(한국문화원연합회)·전주시 문화관광 자료 확인
장면 · 봄
새벽 어스름에 좌판보가 먼저 펴졌다. 머리에 인 함지박을 내려놓은 어머니들이 냉이와 달래, 물오른 미나리를 소쿠리마다 소복이 담아 놓으면, 지나던 사람들이 향긋한 흙내에 걸음을 멈췄다. 한 줌 더 얹어 주는 손과 천 원 한 장을 밀고 당기는 흥정이 아침 내내 정답게 오갔다.
장면 · 여름
한여름 좌판 위에는 광목 그늘막이 드리워졌다. 애호박과 풋고추, 자두와 참외가 더위에 물러질세라 어머니들은 연신 부채질을 했고, 소나기가 몰려오면 골목 전체가 한 몸처럼 비닐을 펴서 서로의 좌판부터 덮어 주었다. 비가 지나간 뒤의 장터에는 젖은 흙냄새와 웃음소리가 함께 피어올랐다.
장면 · 가을
가을볕이 좋은 날이면 좌판마다 빨갛게 널린 고추와 하얗게 마르는 무말랭이가 색을 다퉜다. 추석 대목의 골목은 발 디딜 틈이 없어, 아이 손을 잡은 손님과 짐을 인 상인이 어깨를 비켜 가며 서로 먼저 지나가라 손짓했다. 저울눈보다 후한 덤이 오가는 것도 대목의 인심이었다.
장면 · 겨울
겨울 장은 일찍 어두워졌다. 김장 배추와 무가 산더미로 쌓인 골목에서 어머니들은 연탄불 화로에 언 손을 번갈아 녹이며 자리를 지켰다. 목도리에 턱을 묻고도 손님 소리에는 벌떡 일어났고, 마지막 배추 한 접을 넘기고서야 좌판보를 갰다. 집에 돌아가면 또 한 식구의 저녁이 그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이 파한 저녁이면 국밥집 골방에 계모임이 앉았다. 꼬깃꼬깃한 지폐를 펴서 곗돈을 모으고, 이번 달 탈 사람의 이름이 불리면 박수가 터졌다. 은행 문턱이 높던 시절, 계는 좌판 어머니들의 적금이자 보험이었다. 그 돈이 자식의 등록금이 되고, 혼사의 밑천이 되고, 새 좌판의 물건이 되었다.
시대 자료로 확인한 대목
계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상호부조 조직이다. 혼사와 환갑, 초상처럼 큰돈 들 일에 대비해 여럿이 돈을 모아 차례로 목돈을 마련했고, 뜻밖의 돈이 생겼을 때 '계탔다'고 하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편집 확인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계' 항목 확인
좌판 위의 사계절이 한 집안의 사계절을 떠받쳤다. 통장 대신 곗돈으로, 월급 대신 하루 벌이로 살림을 일으킨 세월이었다. 풍남문은 지금도 그 자리에 서서, 새벽마다 다시 펴지는 좌판보를 내려다보고 있다.
CONTEXT STAMPS
이 이야기의 시절과 장소
THEN & NOW
그 시절 → 지금
오래된 장면에서 오늘 챙겨 볼 생활정보로 길을 이어 놓았습니다.
NEXT ESS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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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
뱃고동 울리던 자갈치 그 새벽
얼음 부서지는 소리와 갯내가 골목을 채우던 자갈치의 새벽, 피란 보따리에서 시작된 국제시장의 북적임. 1970년대 부산의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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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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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 · 연재 우다방 연가 제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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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도 아닌 우체국 앞 길바닥이 만남의 방이 되던 곳. 1970년대 광주 충장로, '우다방' 앞의 기다림과 골목의 저녁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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