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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

논밭이 아파트 숲이 되던 여름

무논에 물 대는 소리와 소달구지의 아침이, 흙먼지 이는 신작로와 회색 건물로 바뀌어 가던 시절. 1970년대 후반 강남의 변화를 담았습니다.

공개일

논배미 너머로 아파트와 크레인이 올라서던 강남 개발기 일러스트

새벽이면 논에 물 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논은 아침 햇살을 받아 은박지처럼 반짝였고, 개구리 울음이 들판을 채웠다. 흙냄새 섞인 축축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면, 논둑으로 소달구지가 삐걱이며 지나갔다. 그 무렵의 강남은 서울보다 시골에 가까웠다.

시대 자료로 확인한 대목

지금의 강남 일대는 1960년대 말 영동지구 개발이 시작되면서 논밭에서 시가지로 바뀌어 갔다. '말죽거리 땅값이 들썩인다'는 소문이 신문에 오르내리던 때가 그 무렵이고, 1970년대 중후반에는 역삼동 일대에도 아파트 단지가 잇따라 들어섰다.

편집 확인 · 영동지구 개발·말죽거리 지가 급등은 당시 보도와 서울시 기록으로 확인

들 한가운데 붉은 깃발이 꽂히던 날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 측량 기사들이 삼각대를 세우고 논둑을 오가며 줄자를 늘였고, 동네 노인들은 팔짱을 낀 채 그 낯선 셈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어느 집 논에 말뚝이 박혔다더라, 누구네는 땅을 팔고 이사를 간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우물가와 복덕방 앞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갔다. 깃발이 꽂힌 논에는 그해부터 모를 내지 않았다.

어느 해부터 신작로에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자갈을 실은 트럭이 하루 종일 오갔고, 마른 흙길은 지날 때마다 뿌옇게 부풀어 빨래와 아이들 머리카락까지 하얗게 덮었다. 논이 메워지고 말뚝이 박히더니, 회색 건물이 하나둘 하늘로 솟았다. 시멘트 냄새가 개구리 울음을 밀어내던 여름이었다.

이삿짐을 실은 트럭이 마을을 빠져나가는 일이 잦아졌다. 정든 이웃이 떠나는 날이면 남은 사람들이 신작로까지 나와 손을 흔들었고, 빈집 마당에는 장독대만 한동안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개구리 울음이 해마다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한참 뒤에야 알아차렸다.

말죽거리에도 포장도로가 깔리고 버스가 늘었다. 주막 대신 다방이, 논밭 대신 상가가 들어서며 저녁 풍경이 바뀌었다. 낯설면서도 설레던 그 변화 속에서 사람들은 사라지는 것과 오는 것을 함께 지켜보았다. 그 흙먼지 위에 오늘의 강남이 서 있다.

CONTEXT STAM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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