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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반

연재 · 구로공단 청춘기 2 (전 3화)

여름 벌집촌, 우체국 가는 길

선풍기 바람이 앞줄에서 끝나던 한여름 작업장, 월급봉투에서 떼어 낸 우편환 한 장, 늘 짧았던 어머니의 답장. 연재 '구로공단 청춘기'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공개일

선풍기와 편지지 위 우편환, 수박 한 쪽을 그린 여름 벌집촌 저녁 일러스트

장면 · 여름 새벽

여름의 벌집촌은 겨울과 다른 소리로 깨어났다. 동트기 전 골목 공동 수돗가에 세숫대야 부딪히는 소리가 달그락거렸고, 밤새 미지근해진 방에서 나온 젊은이들이 찬물 한 바가지로 잠을 털어 냈다. 좁은 마당에는 빨랫줄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 널어 둔 작업복이 채 마르기도 전에 다시 입고 나서는 아침이 많았다. 그래도 새벽 공기만은 잠깐 서늘해서, 통근버스를 기다리는 골목 어귀에서는 누구랄 것 없이 숨을 크게 들이켰다.

한여름의 작업장은 미싱 수백 대가 뿜는 열기로 바깥보다 더웠다. 천장에서 큰 선풍기가 돌았지만 바람은 앞줄에서 끝났고, 목에 두른 수건은 오전이 가기 전에 흠뻑 젖었다. 실밥이 땀에 붙은 팔뚝을 털어 낼 새도 없이 손끝은 박음질 선을 따라갔다. 얼음을 동동 띄운 보리차 주전자가 작업장을 한 바퀴 도는 잠깐이, 여름 하루의 가장 시원한 순간이었다.

시대 자료로 확인한 대목

공단 곁 가리봉동 일대의 셋집은 한 지붕 아래 작은 방 수십 칸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벌집'이라 불렸다. 부엌 한 칸 딸린 방 하나에 두세 사람이 함께 살았고, 낮일과 밤일이 엇갈리는 동료끼리 한 방을 번갈아 쓰는 일도 있었다고 전한다.

편집 확인 · 디지털구로문화대전·국가기록원 자료 확인

장면 · 월급날 저녁

월급봉투를 받은 날 저녁이면 벌집촌의 밥상 위에 편지지가 펴졌다. 방세와 밥값, 적금 몫을 덜어 내고 남은 지폐를 몇 번이고 세어 본 뒤, 고향으로 보낼 몫을 따로 접어 두는 손들이 있었다. 편지는 늘 같은 말로 시작됐다. 어머니,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몇 줄 쓰다 지우다 보면 밤이 깊었고, 부칠 돈보다 부칠 말을 고르는 데 더 오래 걸렸다.

일요일 오전의 우체국은 공단 사람들로 붐볐다. 봉투에 지폐를 그대로 넣어 부치면 오가다 없어진다는 말이 흔하던 때라, 다들 창구에서 우편환으로 바꿔 편지에 접어 넣었다. 도장을 꾹 눌러 받은 우편환 한 장을 편지지 사이에 끼우고 봉투에 침을 발라 붙이면 그 주의 가장 큰 일을 마친 셈이었다. 우체국 문을 나서는 걸음은, 지갑이 가벼워진 만큼 오히려 가벼웠다.

"돈은 됐으니 밥 굶지 마라." — 답장은 늘 짧았다. 그런데 접힌 편지지 갈피에는 가끔, 보낸 돈의 일부가 도로 들어 있었다.

열대야의 골목에는 저녁마다 평상이 나왔다. 옆방 식구들과 수박 한 통을 반씩 나눠 사서 둘러앉으면, 모기향 연기 곁으로 고향 이야기가 한 바퀴 돌았다. 전라도와 경상도와 충청도의 말씨가 한 평상 위에서 섞였고, 누군가 부르다 만 유행가를 다른 누군가 이어 불렀다. 방은 좁고 여름은 길었지만, 그 골목의 저녁만은 넉넉했다.

그 여름 우체국 창구에서 부친 것은 돈이 아니라 안부였다. 얇은 우편환 한 장에 접혀 오간 마음들이 한 집안을 건사했고, 그렇게 건사된 집들이 모여 한 시대를 지났다. 보낸 쪽도 받은 쪽도 그 여름을 오래 기억한다.

CONTEXT STAMPS

이 이야기의 시절과 장소

THEN & NOW

그 시절 → 지금

오래된 장면에서 오늘 챙겨 볼 생활정보로 길을 이어 놓았습니다.

생활 가이드

돈 보내기 전, 그 계좌가 사기 계좌인지 1분 만에 확인하기

우체국 우편환으로 부치던 돈이 이제는 손안의 계좌이체가 되었습니다. 요즘은 보내기 전에 받는 계좌부터 확인하는 습관이 그 시절의 도장만큼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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