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반
연재 · 순천 들녘의 한 해 제1화 (전 3화)
낙안읍성 아랫길, 소 몰던 저물녘
정강이까지 소름이 오르던 이른 논물, 논두렁의 새참, 돌담 위로 번지던 노을. 1980년대 순천 들녘의 하루를 담았습니다.
공개일

장면 · 모내기
이른 아침 논에 들어서면 발목을 감싸는 물이 서늘했다. 밤새 식은 논물은 정강이까지 소름을 밀어 올렸고, 발가락 사이로 부드러운 진흙이 뭉클 빠져나갔다. 허리를 굽혀 모를 한 줌씩 꽂다 보면 등 뒤로 해가 차올라 목덜미가 따끈해졌다. 무논 어디선가 개구리가 울고, 백로 한 마리가 긴 다리로 논을 천천히 건너갔다. 앞서 심는 이가 나직이 흥얼거리면 옆 사람도 장단을 맞췄고, 그 소리에 맞춰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젖은 흙냄새와 풀냄새가 콧속으로 밀려들던, 그런 아침이었다.
장면 · 새참
해가 머리 위에 오면 논두렁에 새참이 펼쳐졌다. 광주리를 이고 온 손길이 보자기를 걷으면 김 오르는 감자와 시원한 막걸리, 짭조름한 열무김치가 나왔다. 땀을 훔치며 둘러앉아 한술 뜨면 짠맛이 온몸으로 퍼지고, 누군가의 우스갯소리에 다 함께 웃음이 터졌다. 그 잠깐의 그늘과 바람이 어찌나 달던지, 다시 논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저물녘이면 소를 앞세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걸음들이 있었다. 낙안읍성 낮은 돌담 위로 노을이 붉게 번지고, 소의 느린 걸음마다 흙먼지가 발끝에서 뽀얗게 피어올랐다. 굴뚝마다 저녁연기가 곧게 오르고, 골목 어귀에서 아이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하루가 저물었다.
순천 들길의 흙냄새와 저녁연기의 온기는, 그 들에서 자란 이들의 마음 어딘가에 고요히 남아 있다. 들은 지금도 해마다 푸르러진다.
CONTEXT STAMPS
이 이야기의 시절과 장소
THEN & NOW
그 시절 → 지금
오래된 장면에서 오늘 챙겨 볼 생활정보로 길을 이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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