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반
연재 · 순천 들녘의 한 해 제2화 (전 3화)
물꼬 지키던 여름밤의 손전등
쩍쩍 갈라지는 논바닥을 올려다보던 낮 하늘, 소나기 몰려오던 밤의 논둑, 우물가의 등목. 연재 '순천 들녘의 한 해' 여름 편입니다.
공개일

장면 · 한낮
모가 뿌리를 내리고 나면 이번에는 풀과의 싸움이었다. 한여름 땡볕 아래 논에 엎드려 피를 뽑다 보면 등짝이 불에 덴 듯 따가웠고, 무논에서 올라오는 김에 온몸이 흠뻑 젖었다. 허리를 펴고 밀짚모자 챙을 들어 올리면 들판 끝까지 아지랑이가 일렁였다. 매미 소리가 온 들을 덮어도, 김매는 손들은 이랑 끝까지 묵묵히 나아갔다.
비가 귀한 해에는 하늘 보는 날이 많아졌다.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기 시작하면 물꼬가 온 식구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윗논과 아랫논이 물 한 줄기를 두고 낯을 붉히기도 했지만, 해가 지고 나면 결국 논둑에 나란히 앉아 담배 한 대를 나누는 것이 이웃이었다. 새벽마다 삽을 메고 물꼬를 보러 가는 걸음이 그 여름의 첫 일과였다.
"하늘이 해 주는 농사를 사람이 어쩌겠나." —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른들은 밤마다 마당에 나가 별빛과 구름의 낌새를 오래 살폈다.
장면 · 소나기 밤
장마 끝물의 어느 밤,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빗줄기가 굵어지면 온 집이 잠에서 깼다. 비료 포대를 뒤집어쓰고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논으로 내달렸다. 불빛이 빗속의 논둑을 더듬는 동안 아버지는 물꼬를 트고 막으며 물길을 다스렸고, 아들은 그 곁에서 삽자루를 붙들었다. 빗소리에 서로의 목소리가 묻혀도 손발은 신기하리만치 척척 맞았다.
시대 자료로 확인한 대목
농사일의 고비마다 이웃끼리 일손을 빌려주고 갚는 품앗이가 있었고, 모내기나 김매기처럼 때를 놓치면 안 되는 큰일에는 마을이 통째로 한 논에 붙는 두레가 섰다. 힘든 철을 여러 집이 한 몸처럼 넘는 이 풍습이 들녘의 여름을 오래 지탱해 왔다고 전한다.
편집 확인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두레'·'품앗이' 항목 확인
장면 · 우물가
해가 지면 우물가가 붐볐다.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찬물을 등에 끼얹으면 하루의 더위가 한꺼번에 씻겨 나갔고, 어푸어푸 하는 소리에 담 너머 웃음이 따라왔다. 마당에 멍석을 펴고 둘러앉은 저녁상에는 애호박 된장국과 풋고추가 올랐다. 낮에 물꼬를 다투던 윗논 어른이 참외 몇 개를 들고 슬며시 사립문을 들어서는 것도, 그런 저녁이었다.
그 여름을 넘기고 나면 벼는 하루가 다르게 짙어졌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초록 들판이 한 방향으로 몸을 눕혔다 일어서는 것을 보며 어른들은 논둑에 서서 오래 말이 없었다. 이삭이 패기 시작하면, 걱정 반 기대 반의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물꼬 하나에 울고 웃던 여름이었다. 하늘에 기대면서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던 그 부지런함이, 갈라진 논바닥에도 기어이 물을 대고 벼를 키웠다. 들녘의 여름은 그렇게 사람의 밤잠으로 깊어 갔다.
CONTEXT STAM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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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태풍으로 집이 피해를 입었을 때, 재난지원금과 풍수해보험
밤새 물꼬를 지키던 마음은 지금도 장마철이면 같습니다. 호우·태풍으로 집이 피해를 입었을 때 재난지원금과 풍수해보험을 확인하는 방법을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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