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반
연재 · 구로공단 청춘기 제1화 (전 3화)
새벽 버스와 미싱 소리, 그 시절 청춘
별이 남은 새벽의 통근버스, 파도처럼 밀려오는 미싱 소리, 하나뿐인 냄비의 라면. 1980년대 초 구로공단 청춘들의 하루입니다.
공개일

장면 · 새벽
아직 별이 남아 있는 새벽, 골목 끝에서 통근버스의 낮은 엔진 소리가 들려오면 언 손을 호호 불며 뛰어나가는 발걸음들이 있었다. 버스 안은 졸음과 사람들의 온기로 뿌옇게 김이 서렸고,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기댄 젊은이들은 그 서늘한 감촉으로 얕은 잠을 밀어냈다. 누군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그들은 아직 불이 켜지지 않은 도시를 지나 공장으로 실려 갔다.
시대 자료로 확인한 대목
구로공단 — 정식 이름은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 — 은 1967년 제1단지가 준공된 뒤 가리봉동 일대로 2·3단지가 이어지며 들어선, 그 시절 한국에서 가장 큰 공업단지였다. 입주 업체는 의류·봉제가 가장 많았고, 지방에서 올라온 젊은 노동자들이 공단 곁 '벌집촌'의 좁은 방에 모여 살았다.
편집 확인 · 국가기록원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디지털구로문화대전 확인
작업장 문을 열면 수백 대의 미싱이 한꺼번에 돌아가는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드르륵드르륵, 그 규칙적인 울림 속에서 손끝은 천을 따라 쉼 없이 움직였고, 실밥 냄새와 기계 기름 냄새가 하루 종일 코끝에 머물렀다. 형광등 불빛 아래 어깨가 뻐근해지고 눈이 침침해질 무렵이면, 어느새 창밖은 다시 캄캄했다.
야근을 끝내고 돌아온 자취방, 좁은 부엌에서 끓는 라면 냄새가 온 방을 데웠다. 하나뿐인 냄비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후후 불며 나눠 먹던 국물의 온기. 몸은 고단해도 서로의 체온으로 버티던 청춘들이 그 골목마다 살고 있었다.
그 미싱 앞의 젊음이 오늘의 살림 밑천이 되었다. 평생 일해 온 손은 나이가 들어도 일의 감각을 잊지 않는다. 공단은 이름을 바꾸고 유리 건물로 다시 섰지만, 새벽 버스를 기다리던 그 골목의 부지런함은 여전히 어딘가에서 하루를 열고 있다.
CONTEXT STAMPS
이 이야기의 시절과 장소
THEN & NOW
그 시절 →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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