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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반

연재 · 구로공단 청춘기 3 (전 3화)

설날 새벽 고속버스, 보따리 두 개

몇 시간을 줄 서서 끊은 귀성표, 동생 운동화가 든 보따리, 그리고 서울로 돌아올 때 더 무거워진 보따리. 연재 '구로공단 청춘기'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공개일

보자기 보따리 두 개와 차표, 고속버스를 그린 설날 귀성길 일러스트

장면 · 표 구하기

설을 열흘쯤 앞두면 공단의 화제는 온통 차표였다. 누구는 새벽 몇 시부터 줄을 섰다더라, 어느 창구 줄이 빨리 줄어든다더라 하는 말들이 미싱 소리 사이로 오갔다. 쉬는 날 첫차로 터미널에 나가 신문지를 깔고 앉아 몇 시간을 기다리다, 손바닥만 한 차표 한 장을 지갑 깊숙이 넣고 돌아오는 길은 개선 행진 같았다. 그날 밤부터 잠자리에 누우면 고향 마을의 겨울 논둑이 먼저 보였다.

시대 자료로 확인한 대목

명절 귀성은 해마다 신문 1면을 채우는 나라의 큰일이었다. 귀성 인파를 '민족 대이동'이라 부르는 보도가 이 무렵이면 되풀이됐고, 표를 구하려는 줄이 터미널과 역 광장을 몇 바퀴 감았다고 전한다. 예매가 시작되는 날 밤샘 줄이 서는 풍경도 연례행사처럼 이어졌다.

편집 확인 · 당시 신문 보도 확인

귀성 전날 저녁의 시장은 공단 사람들의 마음으로 붐볐다. 동생 발에 맞을지 어림하며 고른 운동화, 어머니 어깨에 얹어 드릴 스웨터, 조카들 손에 쥐여 줄 과자 봉지가 하나씩 보따리로 들어갔다. 설탕 한 봉지도 잊지 않았다. 보따리를 묶으며 몇 번을 다시 셈해 봐도, 사 가는 것보다 사 가고 싶은 것이 늘 더 많았다.

장면 · 새벽 찻길

설 전날 새벽의 고속버스는 보따리부터 자리를 잡았다. 선반마다 짐이 그득하고 통로에도 꾸러미가 줄을 섰다. 차창에 낀 성에를 손바닥으로 닦아 내다보면 어둠 속 국도변으로 같은 방향의 불빛들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휴게소에서 선 채로 후루룩 비우는 가락국수 한 그릇이 언 속을 데웠고, 다시 오른 버스 안에서는 여기저기서 코 고는 소리가 명절 인사처럼 오갔다.

버스에서 내려 눈 덮인 신작로를 한참 걸어 마을 어귀에 닿으면, 동구 밖까지 개 짖는 소리가 먼저 마중을 나왔다. 사립문 앞으로 버선발로 뛰어나온 어머니는 아들 손보다 보따리를 먼저 받아 들고는 이내 나무랐다. 뭐 하러 이런 걸 사 왔느냐고. 그러면서도 그 운동화를 자는 동생의 머리맡에 놓아두는 뒷모습이 문틈으로 다 보였다.

"객지 밥이 오죽하냐." — 아랫목 이불 밑에는 더운 밥그릇이 묻혀 있었고, 어머니는 아들이 수저를 들 때까지 곁을 떠나지 않았다.

설을 쇠고 서울로 돌아오는 보따리는 올 때보다 무거웠다. 참기름 한 병, 고춧가루 한 봉지, 꽁꽁 싸맨 김치통에 떡국 떡까지. 가져갈 것 없다는 아들 말은 소용이 없었다. 버스가 마을 모퉁이를 돌 때까지 신작로에 서 있던 어머니의 모습이, 차창의 성에 너머로 오래 지워지지 않았다.

내려가는 보따리와 올라오는 보따리는 방향만 달랐지 담긴 것은 같았다. 형편껏 담은 마음이 해마다 그 길을 오가며 한 집안의 설을 지켰다. 이제는 명절이면 자식들의 차가 집 앞에 서고, 보따리의 방향은 또 한 번 바뀌었다.

CONTEXT STAMPS

이 이야기의 시절과 장소

THEN & NOW

그 시절 → 지금

오래된 장면에서 오늘 챙겨 볼 생활정보로 길을 이어 놓았습니다.

생활 가이드

어르신 교통 혜택, 만 65세부터 확인하는 법

몇 시간을 줄 서야 손에 쥐던 귀성표. 이제 고향 가는 길에는 만 65세부터 챙길 수 있는 교통 혜택이 있습니다. 어디서 무엇을 확인할지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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