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반
연재 · 순천 들녘의 한 해 제3화 (전 3화)
타작마당과 햅쌀 한 솥
참새 쫓던 깡통 소리, 탈곡기의 먼지 속에서 눈만 내놓고 웃던 얼굴들, 수매 길의 가마니와 저녁의 햅쌀밥. 연재 '순천 들녘의 한 해'를 거두는 가을 편입니다.
공개일

이삭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하면 들녘의 걱정은 참새 떼로 옮겨 갔다. 논 가운데 허수아비가 팔을 벌리고 섰고, 논둑에는 빈 깡통을 줄줄이 매단 새끼줄이 쳐졌다. 원두막에서 줄을 당길 때마다 깡통들이 왈그락달그락 소리를 냈지만, 영악한 참새들은 며칠이면 그 소리에도 무뎌졌다. 아이들이 학교가 파하기 무섭게 논으로 불려 나오던 철이었다.
시대 자료로 확인한 대목
가을걷이가 끝나면 정부가 농가의 벼를 사들이는 추곡수매가 기다리고 있었다. 검사원이 등급을 매기는 수매장 앞에 가마니가 길게 줄을 섰고, 그 대금이 농가의 한 해 살림과 이듬해 농사의 밑천이 되었다고 전한다.
편집 확인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추곡수매제도' 항목 확인
장면 · 벼베기
서리가 내리기 전에 온 마을의 낫이 들로 나왔다. 쓱싹쓱싹, 벼 포기 베이는 소리가 논마다 가득했고, 베어 낸 볏단이 논바닥에 나란히 누워 볕을 쬐었다. 여름내 품앗이로 뭉친 손들이라 일의 아귀가 척척 맞았다. 허리를 펴는 잠깐마다 어른들은 올해 나락의 됨됨이를 두고 한마디씩 보탰고, 그 말끝은 대개 웃음으로 맺혔다.
"올해는 나락이 실하네." — 가마니 수를 어림해 보는 어른들의 눈가에서, 한 해치 시름이 그제야 조금 풀렸다.
타작날의 마당은 온 동네가 들썩였다. 탈곡기가 왱왱 돌아가면 볏단을 먹이는 손과 알곡을 받아 내는 손이 쉴 새 없이 오갔고, 튀어 오른 먼지와 검불이 머리며 어깨에 뽀얗게 앉았다. 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린 얼굴들이 눈만 내놓고 웃었다. 마당 한쪽에 알곡 무더기가 차오르는 만큼, 저녁 무렵에는 다들 허리가 굽어도 목소리만은 높아졌다.
장면 · 수매 길
수매 날 새벽, 경운기 짐칸에 가마니를 싣고 수매장으로 나서는 길은 멀어도 가벼웠다. 검사원의 손이 가마니에 꽂혔다 나올 때마다 어른들의 눈이 그 손끝을 따라다녔고, 등급 도장이 찍히면 참았던 숨이 새어 나왔다. 대금을 품에 넣고 돌아오는 길에 장에 들러 아이들 운동화와 어머니 털장갑을 고르는 것이, 그날 하루의 호사였다.
장면 · 햅쌀 저녁
방앗간에서 갓 찧어 온 햅쌀로 밥을 안친 저녁, 솥뚜껑을 여는 순간 더운 김과 함께 밥 냄새가 온 집 안에 퍼졌다. 기름이 자르르 도는 흰밥을 고봉으로 푸며, 어른들은 첫술을 뜨기 전에 잠깐 들녘 쪽을 바라보았다. 봄에 물을 대고 여름에 밤잠을 설친 그 논에서 온 밥이었다. 반찬이 단출해도 밥맛 하나로 배가 불렀다.
모내기의 서늘한 논물에서 햅쌀 한 솥의 더운 김까지, 들녘의 한 해가 그렇게 돌았다. 흙에 들인 정직한 수고가 밥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해마다 눈으로 보고 자란 사람들은, 평생 무엇이든 쉽게 거두려 하지 않았다.
CONTEXT STAMPS
이 이야기의 시절과 장소
THEN & NOW
그 시절 → 지금
오래된 장면에서 오늘 챙겨 볼 생활정보로 길을 이어 놓았습니다.
예방접종 무료 대상 확인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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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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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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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반 · 연재 구로공단 청춘기 제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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