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1980년대
연탄과 곤로와 재봉틀의 일대기
열아홉 구멍의 연탄, 심지 올려 불붙이던 석유곤로, 소 한 마리 값이던 재봉틀, 노란 양은도시락. 한 시대를 살다 물러난 세간살이 네 가지의 일대기입니다.
공개일

일대기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시대의 부엌과 안방을 지키다 소리 없이 물러난 물건들에게도 태어나고 일하고 떠난 세월이 있다. 여기, 그 시절 집집마다 살았던 네 가지 세간의 일대기를 적는다.
장면 · 연탄
연탄의 하루는 새벽에 시작됐다. 불이 사그라들기 전에 갈아야 했으므로, 겨울 새벽마다 연탄집게를 든 손이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았다. 다 탄 흰 연탄재는 골목 어귀에 나란히 쌓였다가 빙판길에 뿌려져 마지막 소임을 다했다. 광에 연탄 몇 백 장을 들여놓은 날은 겨울 채비를 다 마친 듯 마음이 든든했다.
시대 자료로 확인한 대목
나라에서 처음 정한 연탄의 표준은 구멍 열아홉 개, 이른바 19공탄이었고 뒤에는 구멍 스물두 개짜리가 흔해졌다. 1980년대 후반의 조사에서는 전국 가구 열에 여덟 가까이가 연탄을 땠다고 전한다. 그러나 아궁이 틈으로 새는 연탄가스, 곧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가 신문 1면에 오르내릴 만큼 잦았고,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도시가스와 기름보일러가 퍼지면서 연탄의 시대는 빠르게 저물었다.
편집 확인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국립민속박물관 자료·당시 보도 확인
장면 · 석유곤로
여름 부엌의 주인공은 석유곤로였다. 무더위에 아궁이 불을 지피는 대신, 심지를 돌려 올리고 성냥을 그어 대면 파란 불꽃이 동그랗게 피어올랐다. 석유 냄새가 잠깐 코를 스치고 나면 이내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었다. 심지를 너무 올려 냄비 밑이 그을면 어머니의 혀 차는 소리가 따라왔고, 다 쓴 뒤에는 심지를 내려 불을 재우는 것으로 저녁이 마무리됐다.
장면 · 재봉틀
재봉틀은 안방의 가장 귀한 세간이었다. 발판을 구르면 드르륵드르륵, 바늘이 천 위를 달렸다. 밤이 깊으면 그 소리가 자장가처럼 방 안을 채웠다. 해진 교복 무릎에 덧댄 천도, 동생에게 물려주려 줄인 바지도, 명절에 맞춰 지은 새 옷도 모두 그 발판 아래에서 나왔다.
시대 자료로 확인한 대목
재봉틀은 1960~70년대 혼수 품목의 첫손에 꼽혔다. 값이 소 한 마리에 맞먹었다고 전할 만큼 귀한 물건이라, 결혼할 때 큰맘 먹고 장만하면 평생을 함께 썼다. 어머니의 재봉틀이 딸에게 물려지는 집도 흔했다.
편집 확인 · 지역N문화(한국문화원연합회)·당시 보도 확인
장면 · 양은도시락
노란 양은도시락은 모서리가 찌그러진 채로 오래 일했다. 김칫국물이 배어 나와 책보를 물들이는 바람에 애를 먹이기도 했지만, 밥 위에 계란부침 한 장이 얹힌 날은 뚜껑을 여는 손이 괜히 우쭐했다. 남은 밥에 김치를 넣고 뚜껑을 닫아 흔들면 그대로 비빔밥이 됐다. 보온도시락이 나오면서 자리를 내주었지만, 그 찌그러진 모서리만큼 정직하게 일한 물건도 드물다.
물러난 세간들은 이제 박물관 유리장 안이나 장터의 골동품 좌판에서나 만난다. 그러나 그 물건들에 손때를 입힌 세월이 오늘 살림의 바탕이 되었다. 물건은 떠나도, 물건을 아껴 쓰던 마음은 대를 물려 남는다.
CONTEXT STAMPS
이 이야기의 시절과 장소
THEN & NOW
그 시절 → 지금
오래된 장면에서 오늘 챙겨 볼 생활정보로 길을 이어 놓았습니다.
NEXT ESSAYS
이 장면과 이어지는 수필

1980년대 후반
언 손을 녹이던 그 밤의 짬밥
별빛만 얼어붙은 전방 초소의 긴 밤과, 교대 뒤에 받아 든 식판의 뜨거운 국물 한 숟갈. 1980년대 후반 전방 부대의 겨울입니다.
수필 펼쳐보기 →
1980년대 후반
강릉 겨울, 아랫목에 묻어둔 밥 한 그릇
문풍지가 울던 밤의 연탄불과 고구마, 늦게 오는 식구를 위해 이불 밑에 묻어 둔 밥그릇. 1980년대 강릉의 겨울 집 안 풍경입니다.
수필 펼쳐보기 →
1980년대 초반
교동 골목, 미제 냄새와 흥정 소리
낮에도 어둑한 좁은 골목, 알록달록한 깡통과 진한 커피 향, 소매를 붙잡는 흥정. 1980년대 초 대구 교동시장의 하루입니다.
수필 펼쳐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