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
동아리방 통기타와 학교 앞 다방의 오후
여섯 줄이 조금씩 어긋난 통기타, 두꺼운 잔의 쓴 커피, 바람에 파닥이던 대자보. 1990년대 초 대구의 캠퍼스 오후를 담았습니다.
공개일

장면 · 동아리방
동아리방 문을 열면 오래된 나무 냄새와 누군가 마시다 만 믹스커피 향이 먼저 마중을 나왔다. 낡은 소파 한쪽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통기타는 손을 대면 여섯 줄이 조금씩 어긋난 소리로 울었다. 그 어긋남마저 정겨워, 코드 몇 개를 겨우 짚으며 목청을 높이는 노래가 오후 내내 이어졌다. 창밖에서 비스듬히 들어온 볕에 먼지가 금가루처럼 떠다녔고, 그 빛 속의 서툰 노래는 이상하게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딱 한 곡만 더 하자." — 해가 다 지도록 동아리방을 떠나지 못하게 만들던, 그 시절 가장 힘이 센 말이었다.
수업이 비는 오후에는 학교 앞 오래된 다방으로 흘러들었다. 어둑한 실내에 낮게 깔린 음악, 두꺼운 잔에 담겨 나오는 커피는 쓰고 뜨거웠다. 한 잔을 앞에 두고 몇 시간이고 앉아 세상과 미래와 사랑에 대해 답도 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학생들로, 나무 탁자마다 팔꿈치 자국이 반질반질했다.
장면 · 게시판 앞
건물 앞 게시판에는 손으로 꾹꾹 눌러 쓴 대자보가 바람에 귀퉁이를 파닥였다. 그 앞에 둘러선 젊은 얼굴들은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며 무언가를 뜨겁게 믿었다. 옳고 그름을 다 알지는 못해도, 그 진지함만은 진짜였다.
장면 · 막걸리집
저녁이 되면 학교 앞 골목의 막걸리집으로 자리가 옮겨졌다.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가 상에 오르고 김치전 한 장이 부쳐져 나오면, 낮에 다방에서 하다 만 이야기가 다시 이어졌다. 젓가락으로 상을 두드리며 부르는 노래는 번번이 박자가 어긋났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주머니를 다 털어도 값이 모자라면 주인 아주머니는 다음에 갚으라며 외상 장부에 이름 대신 동아리 이름을 적어 두었다. 막차에 쫓겨 뛰어나가면서도 문턱에서 한 번 더 돌아보게 되던, 노란 불빛의 가게였다.
캠퍼스를 떠난 지 오래여도, 배우고 떠들고 노래하던 그 오후의 감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배움에는 정년이 없다.
CONTEXT STAMPS
이 이야기의 시절과 장소
THEN & NOW
그 시절 →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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